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의복, 음식 그리고 주거 공간이겠지. 그렇다면 의식주가 갖춰지고 나서는? 어떤 동기로 삶을 살아갈까? 그저 살아만 가는 것이 아닐 것 아닌가. 그래서 고대로부터 인류는 '놀이'라는 것을 해오지 않았던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아니, 먹고 자고 싸는 삶에서 좀더 의미를 찾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물체를 두드려 음악을 연주했을 것이고,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땅 위를 달리는 연습을 하거나 물에서 헤엄을 쳤을 것이고, 누군가는 막대기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숙달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았을 것이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즉 '정체성'을 형성했을 것이다.
이제 현대에 와서 우리 인류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여러 기술 발전에 힘입어 더 이상 굶지 않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자아실현'이라는 개념을 안다. 단순하게 사는 삶이 아닌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삶. 그것을 우리는 삶의 동기가 되는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규정지을 수도, 누군가에게 규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의식과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찾아내거나 규정짓기 굉장히 어렵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뜻하는 대로 쌓아나가는 사람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면 말이다.
역행자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독한 판단과 계획을 세울 만큼 충격적인 경험은 정말 드물게 나타난다.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죽기 직전에야 경험할 그런 일이 일어날까?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스스로 글을 적으면서. 그리고 스스로 그런 정체성을 가지게 만드는, 즉 자기최면을 걸어줄 만큼 주변 환경을 세팅하는 것.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는, 그저 상황이 갖춰지면 그에 맞게 반응해 행동하는 기계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자유의지라는 착각 속에서, 관성에 속아 살아왔는지를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계획한 대로 실행할 수 없었다. 유튜브? 친구들과 여러 번 이야기만 나누고, 실제로 알아보지도 않았다. 실제로 행동하지 않았다. 꿈을 위해 실제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 벽에 크게 적었다. '나는 연봉 1억 사업가가 된다' 라고. 14번 적었다.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기 위해서, 그리고 그대로 되기 위해서. 내 정체성을 '연봉 1억 버는 사업가'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 세팅해야지. 내 주변 환경을, 연봉 1억 사업가에 맞게 말이다. 내 방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정리 안 된 방을 과연 1억 연봉 사업자의 방이라고 누가 생각할까? 나 스스로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아니, 오히려 그것이 중요하다. 나 스스로도 과연, 연봉 1억 버는 사업자의 방 답구나 여겨야 할 것이다.
책은 강조한다. 죽을똥 살똥 하는 노력보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해 움직이기 만드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